학술.논문류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甘冥堂 2021. 11. 2. 05:56

1.의식주 생활 중 주택에 대하여

 

6.25사변으로 온 동네가 불에 타거나 파괴되었다. 9.28서울 수복 후 고향집을 다시 지어야만 했다.

당시 고양시 신도면에서 마포에 있는 목재상까지 거의 20km가 넘는 길을 온 마을의 마차 10여대를 동원하여

며칠에 걸쳐 목재를 운반했다.

 

집터에서는 목수들이 대목의 지휘에 따라 서까래, 기둥. 대들보. 창문틀 등을 다듬었다.

목재 다듬기가 어느 정도 진척되자 집터를 다지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집터 다지기를 왜 밤중에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날을 잡은 어느 날 밤, 횃불을 들고 20~30명의 장정들이 지경을 다졌다.

선봉에 선 동네 할아버지가 북을 치며 소리를 하면 지경을 다지는 장정들이 복창을 한다.

 

에헤 에헤야아 에헤 에헤야아 아아아 에헤~”

북을 치는 할아버지의 선창에 따라 지경꾼들이 답을 한다.

에헤 에헤야아 에헤 에헤야아 아아아 에헤~”

이 곡조에 따라 지경돌이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가 내리 떨어져 땅을 다지게 된다.

이 한 곡조에 7번의 지경을 닿는다.

기둥이 설 한 자리의 지경이 끝날 무렵이면 곡조가 달라진다.

에헤라 달고~”

지경꾼의 답도 이에 맞춰 에헤라 달고~”

이 경우에는 지경돌이 두 번 땅을 다진다.

 

주춧돌은 커다란 바윗돌을 인근 채석장에서 싣고 와서 네모나게 다듬는다.

이 돌을 네 군데로 홈을 파서 길게 새끼로 꼰 밧줄을 엮어 지경돌을 만든다.

바윗돌을 다듬는 중에 부서진 돌조각과 인근 야산에서 주어온 돌을 기둥을 세울 자리에

수북이 얹어놓고 지경을 다지면서 그 자리에 주춧돌을 하나씩 얹는 것이다.

 

기둥을 세울 곳마다 이렇게 지경을 다지니 밤은 깊어가고 횃불은 환하다.

중간에 한 번씩 새참으로 막걸리를 곁들이니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지경 다지는 노랫소리가 온 동네에 울리고,

마을 사람들이 구경나와 모두들 내 일처럼 즐겁게 지켜본다. 34개의 주춧돌 놓을 자리를 만들어,

그 위에 주춧돌을 놓았다. 집터가 완성된 것이다.

당시 5살 어린나이임에도 그 구성진 노랫소리와 분위기에 젖어 잠자는 것도 잊고 주변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안채 15, 행랑채 17평을 자 형태로 짓고 안채는 기와를 얹고 사랑채에는 볏짚을 엮어 초가지붕을 얹었다.

싸리나무와 옥수수대, 수수대를 촘촘히 엮어 벽을 만드는데 외벽은 돌과 진흙을 섞어 쌓고 안쪽 벽은

진흙에 찹쌀죽을 섞은 것으로 미장 마감을 한다.

이렇게 하여 안채에는 부엌. 안방. 대청마루. 건너방을 만들고, 사랑채에는 광, 외양간. 대문간. 사랑방. 헛간을 만들었다.

 

집이 완성되었다. 무속인을 불러 성주풀이를 겸한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항아리에 볍씨, 콩 등

곡식을 넣어 볏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감싸서(‘주저리라고도 한다) 뒤뜰 굴뚝 뒤에 모신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업신인 터주대감을 모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해마다 대들보를 얹은 날을 성주생일이라 하여 제사를 올린다. 제사라고 해봐야 어머니가

굴뚝 뒤에 모신 단지앞에 두 손 빌어 무사안녕을 비는 것이며, 이어 시루떡을 집안 곳곳에 올리는 것으로

끝낸다.

 

 

2.의례 중 장례에 대하여

 

관혼상제 중 제일 중요한 의례가 장례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다. 죽어서 이승을 떠나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니 슬프고 엄숙하기 이를 데 없다.

중학교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에 염습하는 것을 직접 참관할 수는 없었지만,

먼발치에서 엿볼 수는 있었다.

시신의 몸을 깨끗한 수건으로 닦은 후 수의를 입힌다. 수의는 삼베옷이다.

이어 시신을 일곱 번 묶어 관에다 모신다. 시신을 염할 때는 곡소리를 내면 안 된다.

염습이 끝나고 관에 모신 후 붉은 만장을 관 위에 얹은 다음, 방 윗목에 모신 후 병풍을 두른다.

바깥마당에서는 상여를 꾸미느라 시끄럽다. 마을 공동 추렴으로 상여를 만들어서 외진 냇가 옆 뚝방에

움집을 짓고 모셔두었다가 마을에 초상이 나면 그것을 이용한다.

출상하기 전날 밤, 낮에 꾸며놓은 빈 상여를 메고 소리와 춤을 추면서 한바탕 놀아댄다.

상주들이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장례는 보통 3일장, 오일장을 지내는데 그 당시에는 5일장을 치렀다.

음력 4월 초순이라 날씨도 덥고 간간히 비도 내리고 하여 많은 고생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발인. 상여가 바깥마당에 대기해 있고, 방안에 있는 관을 모시고 상여 앞에 이르면 마지막 이별이 된다.

상주들이 마지막 떠나는 영정 앞에 큰절을 한다.

이윽고 관을 얹은 상여가 출발한다. 인근에서 소리꾼 할아버지를 모셔 와 상두에서

상여를 인도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딸랑딸랑 종소리를 울리며 부르는 구슬픈 곡조에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상여가 지나가는 길가의 집들은 장독대를 덮고 빨래도 거둬들인다. 대문을 닫기도 하였다.

상여가 가는 중간에 경작하던 논밭 근처에서 노제를 지내며 잠시 쉬기도 하였다.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였다. 어제 저녁 마을 청년들이 미리 구덩이를 파서 정리해 놓은 곳에 도착하면,

상여에서 관을 내린다. 이어 관을 열고 시신만 따로 안장한다.

시신을 안장한 후에 만장을 씌우고 칠성판을 덮는다.

 

흙과 회분을 섞어 칠성판 위를 단단하게 다진 다음 흙을 덮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마을 분들 열 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 번갈아 가며 두툼하고 길다란 장대를 잡고 흙을 다지는데,

소리꾼 할아버지의 망자를 위한 노랫소리가 울린다.

북을 둥둥 울리며 에헤라 달고~”하면 장대를 일제히 높이 들었다가 내리 꽂으며 땅을 다진다.

지경 다질 때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가족. 친인척들이 슬퍼하는 중에 흙 다지기가 끝나고 봉분이 만들어 진다.

이어 무덤 주위에 잔디를 입히고 이미 만들어 놓은 제단을 제자리에 앉힌다.

그 위에 젯상을 차려 놓고 마지막 절을 하면 산상에서의 일정이 끝나게 된다.

 

해마다 명절 때면 산소를 찾는다. 어렸을 때는 눈이 많이 쌓이면 아침 일찍 빗자루와 고무래를 들고

산소에 눈을 치우러 다녔다. 강아지가 앞장서 뛰어가고 그 뒤를 당연한 듯 추위도 잊고 따라가서

눈을 치우느라 한나절을 보냈다. 그 시절이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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