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4 4

꽃병과 약병 사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름답다 연분홍 벚꽃이 떨어지지 않고 항상 나무에 붙어 있다면 사람들은 벚꽃 구경을 가지 않을 것이다. 활짝 핀 벚꽃들도 한 열흘쯤 지나면 아쉬움 속에서 하나 둘 흩어져 떨어지고 만다. 사람도 결국 나이가 들면 늙고 쇠잔해져 간다. 사람이 늙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 세상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넘쳐 나 발 디딜 틈도 없이 말 그대로 이 세상은 살아있는 생지옥이 될 것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아쉬워하지 마라. 꽃도, 시간도, 사랑도, 사람도, 결국 사라지고(vanish) 마는 것을··· 사라져 가는 것은 또 다른 것들을 잉태하기에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흐르는 물은 내 세월 같고, 부는 바람은 내 마음 같고, 저무는 해는 내 모습과 같으니 어찌 늙어보지 않고 늙..

삼월 삼짇날 꽃놀이

삼월 삼짇날 꽃놀이 三月三日雜花新 (삼월삼일잡화신) 삼월 삼짇날에 온갖 꽃들이 새로 피니 紫閣君家正耐春 (자각군가정내춘) 자각의 그대 집이 봄과 잘 어울리겠지 搖蕩游絲多九陌 (요탕유사다구맥) 하늘거리는 아지랑이는 도성 거리에 많겠고 留連芳草與何人 (유련방초여하인) 길게 이어져 있는 방초는 누구에게 주려나 風烟萬里空回首 (풍연만리공회수) 만리 펼쳐진 풍광에 괜스레 고개 돌릴 뿐 藥物經年不去身 (약물경년불거신) 해 넘도록 약물은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오 南郭舊遊渾似夢 (남곽구유혼사몽) 남쪽 성곽에서 옛날 놀던 일 온통 꿈만 같아 白頭吟望暮江濱 (백두음망모강빈) 백발로 저문 강가에서 읊조리며 바라보노라 - 신광수(申光洙, 1712~1775) 『석북집(石北集)』 권3 「삼월 삼짇날 권중범에게 부치다[三月三日寄權仲..

濟河焚舟

濟河焚舟(제하분주) / 春秋左氏傳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은데 예기치 않게 발목을 잡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게으름과 나태함, 불만과 질투, 술과 흡연 등 많은 것이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복병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워 학식과 무용(武勇)을 크게 떨친 분입니다. 평소 술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선생은 술을 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어느날 선생은 제하분주(濟河焚舟)라는 말과 함께 중대한 결심을합니다. 강(河)을 건너고(濟)나면 배(舟)를 불태워버린다(焚)는 뜻입니다. 이제 술을 끓겠다고 결심한다면 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