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精舍 / 朱熹

甘冥堂 2024. 11. 26. 04:23

精舍 (정사) / 朱熹(주희)
- 정사에서 은거 생활의 정취를 읊다 -

琴書四十年 (금서사십년)
거문고와 서책으로 보낸 마흔 해
幾作山中客 (기작산중객)
몇 번이나 산중의 나그네 되었나
一日茅棟成 (일일모동성)
어느 날엔가 초가 하나 지었더니
居然我泉石 (거연아천석)
생각 밖에 나의 자연이 되었노라

< 번역 효송 曉松 >

정사(精舍)는 수행이나 학업에 힘쓰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원(書院)·서당(書堂)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학(私學)의 하나였다.

금서(琴書)는 거문고와 책을 뜻하며,
이는 문인아사(文人雅士)들이 청고한 생활을 할 때 벗하는 필수 도구이다.

모동(茅棟)은 띠풀로 지붕을 인 집을 가리키며,
여기선 무이정사 내의 인지당(仁智堂)을 가리킨다.

천석(泉石)은 물과 돌이 어우러진 자연의 경치를 가리키며, 범범하게 자연을 이르는 말이다.

이 시는 1183년 주자(朱子, 朱熹)가 무이구곡(武夷九曲) 가운데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세우고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12수를 읊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12수 모두 무이정사의 건축물과 둘러싸인 자연에 관해 묘사했으며
그 이면에는 도학(道學:성리학)의 이념들이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무이산은 중국의 푸젠성(福建省) 건녕부(建寧府) 숭안현(崇安縣) 남쪽에 위치한 산이다.
옛날 도가(道家) 신인(神人) 무이군(武夷君)이 이곳에 살았다고 해서 무이산(武夷山)이라 이름 붙여졌고
무이산(武彛山)이라고도 한다.
주봉 천유봉(天游峰, 750m, 838개 계단을 통해서 정상에 올라갈 수 있음)을 포함하여
36봉(峰)과 37암(巖)의 기암절벽이 빼어나게 솟아 있으며, 동굴이 72개 있다.

이는 태산의 웅장함과 화산의 험준함, 황산의 기이함, 계림의 수려함과 함께 명승지로 손꼽힌다.
계곡과 양안(兩岸)의 절벽은 복건 제일의 명승지다.
승진동(升眞洞)•옥녀봉(玉女峯)•
선기암(仙機岩)•금계암(金雞岩)•
철적정(鐵笛亭)•선장봉(仙掌峯)•
석당사(石唐寺)•고루암(鼓樓岩)•
신촌시(新村市) 등 아홉 명소가 있다.

주희(朱熹, 1130~1200년) 선생은 남송(南宋) 때의 문인으로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중국 사상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논어〉와 〈맹자〉에 관한 집주(集注)를 저술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나타냈는데,
중국·한국·일본 등의 지식인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주희는 역사에도 깊은 흥미를 보여 사마광의 역사서인 〈자치통감〉의 축약과 재편집을 지휘,
1172년 〈자치통감강목〉을 완성했다. 저서로 〈사서장구집주 四書章句集注〉·〈주역본의 周易本義〉·〈서명해 西銘解〉·
〈태극도설해 太極圖說解〉·〈시집전 詩集傳〉·〈초사집주 楚辭集注〉,
그밖에 후인이 편찬한 〈주문공문집 朱文公文集〉·〈주자어류 朱子語類〉 등이 전한다.
                                     ♤

詩 '精舍'에 관한 箕山 멋대로의 해석

이 시를 풀면서 먼저 착안한 점은 承句의 幾와 結句의 居然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입니다.
幾을 '몇 번'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거의'라는 뜻으로 보는것은 어떤가요?
다음 '居然'을 현대 중국어에서 주로 쓰는 '뜻밖에' 또는 '의외로'라는 뜻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현대 중국어에서는 古體의 문어로 쓰이는 '확실히'라는 뜻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요?

우선 幾作과 居然은 承句와 結句에 위치하면서 對句關係에 있다고 본다면 후자 즉, 幾는 '거의'라는 뜻으로,
居然은 '확실히'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시의 묘미를 높여주는 해석이 아닐까요?

게다가 琴書로 四十年을 보낸다고 여러 번 산중의 나그네가 되는 것과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오히려 琴書를 벗하며 사십년을 보냈으니 이제는 나도 욕심을 버린 초탈한 산중객이 되었다고
스스로 自負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結句의 '居然'도 轉句의 초가집을 지었다는 것과 연관시켜 해석한다면 초가를 짓기 전에 스스로 산중객이 되었다고 자부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고 초가를 짓고 나서야 비로소 '확실히' 산중객이 되어
눈앞에 보이는 자연 즉 泉石이 내것이 되었다는 희열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이 시를 소생의 자의로 다시 풀어 보자면,

  거문고와 서책을 벗한 지 사십년
  나도 거의 산중객이 되었을까
  어느 날 초가 한 채 지었더니
  확실히 泉石이 내해* 되었네.  

'내해'는 '내 것'이라는 古語로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지금도 쓰는 줄로 압니다.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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