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의 지조와 절개
성삼문(成三問, 1418 ~1456년)은 단종(端宗) 복위를 추진하는데 앞장섰다가 발각돼 39세의 젊은 나이로 능지처참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 되었다.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로 선발되어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세종이 훈민정음 28글자를 만들 때, 成三問(성삼문)은 申叔舟(신숙주), 朴彭年(박팽년), 河緯地(하위지), 李塏(이개), 李石享(이석형) 등과 함께 훈민정음을 제작하여 반포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皇甫仁(황보인), 金宗瑞(김종서)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후,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정난공신의 칭호를 내렸다. 성삼문은 이를 부끄럽게 여겨 거절하고, 선생과 朴彭年 (박팽년)이 주도하여, 문종과 단종의 처가 식구들이 중심이 되고, 河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