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6

燈火可親의 유래

한유(韓愈)는 중국 초당(初唐)시대의 문인, 작가, 정치인으로 시문의 대가이다. 자(字)는 퇴지(退之). 한문공(韓文公)이라고도 한다. 중국과 일본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후대 성리학(性理學)의 원조이다. 어려서 고아였고,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낙방했다. 그 후 25세에 진사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지냈다. 사후에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추증되었다. (768 - 824) 讀書城南 (성남으로 공부하러 가는 아들에게) 木之就規矩 나무가 각재나 원형이 되는 것은 在梓匠輪輿 목수에게 달려 있고 人之能爲人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由腹有詩書 머리에 시서(詩書)가 들어서이다. 詩書勤乃有 학문은 부지런하면 얻게 되고 不勤腹..

山行 -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붉구나

山行 / 杜牧 遠上寒山石徑斜 (원상한산석경사) 한산 위에 오르니 멀리 돌길이 비껴 있고 白雲生處有人家 (백운생처유인가) 흰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있네. 停車坐愛楓林晩 (정거좌애풍림만) 해질녘 단풍숲이 좋아 수레를 멈췄더니 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 서리맞은 나뭇잎이 이월의 꽃보다 붉구나 두목(杜牧, 803-852)은 당나라의 시인이다. 그가 지은 시 산행(山行)을 읽노라면 마치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산등성이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듯 한폭의 동양화가 그려진다. . 단풍은 그 빛깔이 참으로 아름답지만 머지않아 떨어지기에 깊은 아쉬움도 남긴다. 그래서 때로는 봄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하물며 서산에 해 질 무렵의 붉은 단풍이랴. 인생으로 말하자면 봄꽃이 젊음이 넘치는 청년이라면 서리 맞은 잎은 ..

子曰 唯上知與下愚는 不移니라.

................................................................................................................... 11월17일 322. 子曰 唯上知與下愚는 不移니라. (유상지여하우 불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陽貨 3) 사람의 기질(氣質)이 서로 비슷한 가운데에도 좋고 나쁨의 일정함이 있어서 습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의 성(性)이 본래 선(善)한데,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있음은 무슨 까닭인가? 그 성(性)을 말한다면 모두 선(善)하거니와 그 재(才)를 말한다면 하우(下愚)로서 변화시킬 수 없는 자가 있다는 ..

친구가 좋다

어느날 문득 죽을만큼 사랑했던 사람도 모른체 지나가게 될 날이 오고 한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가까웠던 친구가 전화 한 통 없을만큼 멀어지는 날이 오고, 한때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며 다시 만나듯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 말고 그냥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의도적으로 멀리하지 않아도 스치고 떠날 사람은 자연히 멀어지게 되고... 아둥바둥 매달리지 않아도 내 옆에 남을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알아서 내 옆에 남아준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 주고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시간 내 마음 다 쏟고 상처 받으면서 다시 오지 않을 꽃 같은 시간을 힘들게 보낼 필요는 없다. 비 바람 불어 흙탕물을 뒤집어 썼다고 꽃이 아니..

五友歌

윤선도 "오우가" 내벗이 몇인가 하니 水石과 松竹이라 동산에 달 떠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젊은날 올곧은 선비로 뜻한대로 벼슬을 지내다 귀향살이든 타향살이든 삶을 살아낸 윤선도! 돌과물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동산에 떠오르는 달. 자연을 벗삼은 대장부의 삶! 이만하면 멋있지않소! 바람처럼 머물지 못하고 흐르는 우리네 인생! 절로 절로 늙어감에 넘 서러워 아쉬워 마소~~ 五友歌는 윤선도가 은거지인 해남 금쇄동(金鎖洞)에서 지은 시조 작품 중 하나이다. (山中新曲)에 18수 중 6수의 연시조로 (孤山遺稿) 제6권 하편 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중국 신해혁명

현대사 청나라를 타도하라! - 신해혁명 철도 국유화 반대를 구실로 대규모 반청 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특히 쓰촨 지방에서는 시민이 10만명 이상 모인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난다. 당황한 청나라 정부는 민중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병참기지였던 후베이성 우창에 있던 병력을 쓰촨 지역으로 출동시킨다. 우창의 병력이 갑자기 텅 비게 되고 병력 공백이 생긴 우창의 혁명 조직은 지금이 적기라고 여긴다. 그리고 1911년 10월 10일 봉기를 일으키는데 혁명군의 거센 진격 앞에 당시 우창을 담당하던 청나라의 관리는 도주하고 우창이 혁명군의 손에 들어간다. 지금도 대만은 이 10월 10일을 쌍십절이라 부르며 대만 건국 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1911년 10월 10일 봉기를 시작으로 300년 청왕조 타도를 목표로한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