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ㅡ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이를 통해 더욱 강인해지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이 담겨 있다. 작고 연약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갈대’를 통해서 영혼의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