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끝날 무렵 느닷없이 난꽃이 피었다. 난이 꽃피는 시기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겨울이 지난 초봄에 피는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초가을에 피는 것을 보니 새삼스럽다. 사실 이 꽃이 무슨 종류의 난인지도 모른다. 북송의 황정견(黃庭堅)은 『수죽기(脩竹記)』에서 “한줄기에 꽃 한송이가 피고 향기가 많은 것은 난이고, 한 줄기에 예닐곱송이가 피면서 향기가 적은 것은 혜(蕙)이다.”라고 했다. 이로 미루어 한줄기에 꽃 한두 송이가 피었으니 난인 것 같다. 베란다에 함부로 놓아둔 난아 미안해. 장독대 옆에서 장내를 맡으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구나. 시원찮은 글씨지만 붓을 한 번 잡아본다. 萬家春風百花舞 온 동네에 봄바람 부니 온갖 꽃들이 춤을 추는구나. 그러나 아쉽게도 봄이 오려면 반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