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226

붉은 입술 하얀 이

단순호치(丹脣皓齒) -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아름다운 여인‘자식은 오복이 아니라도 이는 오복에 든다’란 속담이 있다. 치아가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어 자식보다 더 중하다고 여겼다. 중요한 이가 아름다움의 기준도 되니 더욱 그 가치를 알겠다. 미녀를 나타내는 수많은 성어 중에 하얀 이를 강조한 것이 눈이나 피부만큼이나 많다.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朱脣皓齒(주순호치)는 屈原(굴원)이 楚辭(초사)에서 노래했고,시원스런 눈동자와 하얀 이 明眸皓齒(명모호치, 眸는 눈동자 모)는 杜甫(두보)가 楊貴妃(양귀비)를 찬미한 시에서 나왔다.똑같이 빨간 입술(丹脣)과 하얀 치아(皓齒)란 말은 曹操(조조)의 넷째 아들 曹植(조식, 192~232)의 시에서 사용됐다. 시문을 잘 지어 형 曹丕(조비)의 구박을 풍자한 七步詩..

261. 下江陵 / 李白

261. 下江陵 / 李白 강릉으로 내려가며   朝辭白帝彩雲間 (조사백제채운간) 아침에 노을 속의 백제성을 작별하고, 千里江陵一日還 (천리강릉일일환) 천리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兩岸猿聲啼不住 (양안원성제부주) 양쪽 벼랑에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데,輕舟巳過萬重山 (경주이과만중산) 가벼운 배는 이미 첩첩산중을 지났다.     江陵(강릉):지금의 호북 강릉현에 있다. 이 시는 제목이早發白帝城>으로 된 판본도 있다. 백제성은 지금의 중경 봉절현에 있다. 시는 건원 2년(759), 이백이 永王 李璘(이린)의 일로 귀양 가는데, 백제성에 이르렀을 때 사면되어, 배를 타고 강릉으로 돌아갔다. 白帝:백제성. 옛터가 지금의 사천성 봉절현 백제산 위에 있다. 彩雲(채운):노을. 지세가 험준하여 항상 구름에 덮..

260. 送孟浩然之廣陵 / 李白

260. 送孟浩然之廣陵 / 李白 맹호연이 광릉으로 가는 것을 송별하며   故人西辭黄鶴樓 (고인서사황학루) 오랜 친구 서쪽으로 황학루와 작별하고烟花三月下揚州 (연화삼월하양주) 꽃피어 아름다운 삼월에 양주로 내려간다.孤帆遠影碧空盡 (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돛배 아득한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唯見長江天際流 (유견장강천제류) 장강이 하늘 끝으로 흐르는 것만 보인다.     孟浩然(맹호연):성당 시인. 之:가다. 廣陵(광릉):지금의 강소 양주. 故人(고인):오랜 친구. 맹호연을 가리킨다. 西辭(서사):서쪽으로 하직하다. 黄鶴樓(황학루):호북성 무한시 무창구의 황학산에 있는 누각. 烟花三月(연화삼월):꽃이 번화하고 아름다움이 짙은 봄날.     【해설】이 시는 이백이 안륙(安陸)을 떠나 태원을 유람하고..

259. 涼州曲 / 王翰

259. 涼州曲 / 王翰 양주의 노래   蒲萄美酒夜光盃 (포도미주야광배) 야광 잔에 포도주 좋은 술欲飲琵琶馬上催 (욕음비파마상최) 마시려고 하는데 말 위에서 비파를 연주하네.醉臥沙場君莫笑 (최와사장군막소) 술 취해 모래밭에 누었다고 그대 웃지 마시게古來征戰幾人回 (고래정전기인회) 예로부터 정벌전쟁에서 몇 명이나 돌아왔나?     涼州詞>제목도 있으며, 唐 악부명이다. 樂府詩集>에 의하면 樂苑>을 인용하여, 이것은 개원 년중 서량부도독 郭知運이 조정에 진헌한 것이라고 한다. 涼州(양주):지금의 감숙 무위. 蒲萄美酒(포도미주):서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포도로 미주를 만들어 한 무제 때 이미 중국에 전해졌다. 夜光盃(야광배):海內十州記>에 의하면, 周穆王 때, 서역에서 일찍이 백옥으로 만든 것을 進獻(진헌)..

258. 春宫曲 / 王昌齡

258. 春宫曲 / 王昌齡 봄 궁전의 노래   昨夜風開露井桃 (작야풍개노정도) 어젯밤 봄바람에 우물가 도화가 피고未央前殿月輪髙 (미앙전전월륜고) 미앙궁 앞 정전에 둥근 달은 높다.平陽歌舞新承寵 (평양가무신승총) 평양 사람의 가무는 새로이 은총 입어簾外春寒賜錦袍 (렴외춘한사금포) 주렴 밖 봄추위에 비단옷 하사 받네.     이 제목에春宮怨>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이 시는 漢武帝 때 위황후의 일을 빌려 읊은 唐代 궁중 내전의 궁원시다.   露井(노정):노천 우물. 露井桃:宋書. 樂志. 鷄鳴古詞(계명고사)>에 “桃生露井上"의 구가 있다. 덮개 없는 우물주위에 심어진 복숭아나무. 未央:미앙궁. 장안성 서남각에 있다. 이 역시 한나라의 궁전을 폄하여 지칭한 것이다. 平陽歌舞(평양가무):漢書. 外戚傳(외..

257. 閨怨 / 王昌齡

257. 閨怨 / 王昌齡 규방의 원망     閨中少婦不知愁 (규중소부부지수) 규중의 어린 신부 근심을 모르고春日凝妝上翠樓 (춘일응장상취루) 봄날 곱게 단장하고 취루에 올랐네.忽見陌頭楊柳色 (홀견맥두양류색) 홀연 밭두렁에 버들 색 보고 悔教夫婿覓封侯 (회교부서멱봉후) 신랑 벼슬길 찾으러 보낸 것 후회하네.     凝妝(응장):성장하다. 곱게 단장하다. 陌頭(맥두):길가. 맥은 밭 사이에 동서로 난 길이다. 夫婿(부서):남편. 覓封侯(멱봉후):봉후를 위하여 종군하다. 벼슬자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해설】明 顧璘(고린):宮情 閨怨詩를 지은 작자는 많지만 이 시와 靑樓曲>두 수와 같은 것은 아직 없다. 온화하고 점잖으며 명백 간단하고, 진실로 아름다운 絶句중의 최고의 지극한 작품이다. 批点唐音...

256. 芙蓉樓送辛漸 / 王昌齡

256. 芙蓉樓送辛漸 / 王昌齡 부용루에서 신점을 송별하며   寒雨連江夜入吳 (한우연강야입오) 찬비 속에 강을 따라 밤에 오 땅으로 들어와 平明送客楚山孤 (평명송객초산고) 날이 밝자 객을 송별하니 초산이 외롭다.洛陽親友如相問 (낙양친우여상문) 낙양의 친구들 내 소식 묻거든一片氷心在玉壺 (일편빙심재옥호)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 옥병 속에 있다 하게.     芙蓉樓(부용루):당대 潤州(지금의 소진강)의 서북쪽에 있는 루. 辛漸(신점):불상. 이 시는 왕창령이 江寧丞으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殷璠의 河岳英靈集> 하권에 실려 있으며, 왕창령은 “만년에 작은 행동도 뽐내지 않았으나, 헐뜯음이 비등하여 다시 먼 지방으로 쫓겨 가 지내게 되었다.”는 바로 이 때다. 왕창령은 이 시에서 친구에게 자기의 청백함을..

255. 九月九日憶山東兄弟 / 王維

255. 九月九日憶山東兄弟 / 王維 중양절에 산동 형제를 생각하며   獨在異鄉為異客 (독재이향위이객) 홀로 타향에 있어 나그네 되니毎逢佳節倍思親 (매봉가절배사친) 좋은 계절 올 때마다 부모 생각 배가 되네.遙知兄弟登髙處 (요지형제등고처) 멀리서도 알 수 있네,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遍插茱萸少一人 (편삽수유소일인) 두루 산수유 꽂았는데 한 사람이 모자라다는 것을.     九月九日:중양절. 山東:華山 동쪽을 가리킨다. 이 시는 왕유가 17세 때 지은 것이다. 당시 그는 장안에 있었는데, 고향 浦州(지금 산서 영제)는 華山의 동쪽에 있었다. 고로 고향의 형제를 산동형제라고 칭했다.   遙知(요지):멀리서 알다. 遍插(편삽):두루 꽂다. 茱萸(수유):일종의 향기가 짙은 식물. 風土記>에 기재되기를, 옛날에..

254. 桃花溪 / 張旭

254. 桃花溪 / 張旭 복숭아꽃 핀 시내   隠隠飛橋隔野煙 (은은비교격야연) 아스라이 나는 듯한 다리가 들판 안개 너머에 있어石磯西畔問漁船 (석기서반문어선) 암석 서쪽에서 어부에게 묻는다.桃花盡日隨流水 (도화진일수류수) 복숭아꽃이 종일 물 따라 흐르는 곳洞在清溪何處邊 (동재청계하처변) 그 동네가 청계의 어디쯤이오?     桃花溪(도화계):지금의 호남 도원현 서남쪽, 도화산으로 부터 발원한다. 이 시는 도원명의 도화원기>의 일을 이어받아, 그것에 작자의 역량을 더했다. 隠隠(은은):희미하여 분명하지 않은 모양. 飛橋(비교):마치 나는 것처럼 높은 다리. 隔(격):~을 사이에 두다. ~너머. 磯:(물가 기). 石磯(석기):물가에 돌출한 암석.     [작자] 張旭(장욱: 생졸년 불상) 자 伯高, 吳郡..

253. 回鄉偶書 / 賀知章

칠언절구 253. 回鄉偶書 / 賀知章 고향에 돌아오니   少小離鄉老大回 (소소이향노대회) 어려서 고향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鄉音无改鬢毛衰 (향음무개빈모최) 고향 말투 바뀌지 않았으나 귀밑머리 드물다.兒童相見不相識 (아동상견불상식) 아이들 마주봐도 알아보지 못하고笑問客從何處來 (소문객종하처래) 웃으며 묻기를 손님은 어디서 오셨나요?     鬢毛(빈모) : 귀밑털. 살쩍.衰(최):稀疎(드물다) 줄다. 빠지다. ‘쇠’로 읽어서 ‘쇠잔하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해설】이 시는 천보3년(744)에 지었으며, 하지장이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의 나이 86세 이었다.     [작자] 賀知章(659~744). 자 季眞. 회계 영흥(지금의 절강 숙산)사람. 어려서 산음 (지금의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