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84

일편단심

성삼문은 단종 복위에 앞장섰으나 발각돼 39세를 마지막으로 처형됐다. 성삼문이 거사 실패로 잡혀 고문을 받을 때 세조가 묻는다.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그러자 성삼문은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蓬萊山 第一峰에 落落長松 되었다가 白雪이 滿乾坤할 제 獨也靑靑하리라 라고 답해버린다. 세조는 죽기를 각오한 성삼문의 의지를 알게 됐다. 또 세조가 성삼문을 직접 심문할 때도 끝내 왕이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 라고 불렀다. 세조가 다시 묻는다. 네가 나를 나으리라고 하니 그럼 내가 준 녹봉(급여)은 왜 먹었느냐?” 그러자 성삼문은 “상왕(단종)이 계시는데 어찌 내가 나으리의 신하인가? 당신이 준 녹은 하나도 먹지 않았으니 내 집을 수색해 보라고" 했다. 세조가 명하여 집을 수색하니 즉위 첫날부터 받은 ..

꽃병과 약병 사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름답다 연분홍 벚꽃이 떨어지지 않고 항상 나무에 붙어 있다면 사람들은 벚꽃 구경을 가지 않을 것이다. 활짝 핀 벚꽃들도 한 열흘쯤 지나면 아쉬움 속에서 하나 둘 흩어져 떨어지고 만다. 사람도 결국 나이가 들면 늙고 쇠잔해져 간다. 사람이 늙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 세상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넘쳐 나 발 디딜 틈도 없이 말 그대로 이 세상은 살아있는 생지옥이 될 것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아쉬워하지 마라. 꽃도, 시간도, 사랑도, 사람도, 결국 사라지고(vanish) 마는 것을··· 사라져 가는 것은 또 다른 것들을 잉태하기에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흐르는 물은 내 세월 같고, 부는 바람은 내 마음 같고, 저무는 해는 내 모습과 같으니 어찌 늙어보지 않고 늙..

삼월 삼짇날 꽃놀이

삼월 삼짇날 꽃놀이 三月三日雜花新 (삼월삼일잡화신) 삼월 삼짇날에 온갖 꽃들이 새로 피니 紫閣君家正耐春 (자각군가정내춘) 자각의 그대 집이 봄과 잘 어울리겠지 搖蕩游絲多九陌 (요탕유사다구맥) 하늘거리는 아지랑이는 도성 거리에 많겠고 留連芳草與何人 (유련방초여하인) 길게 이어져 있는 방초는 누구에게 주려나 風烟萬里空回首 (풍연만리공회수) 만리 펼쳐진 풍광에 괜스레 고개 돌릴 뿐 藥物經年不去身 (약물경년불거신) 해 넘도록 약물은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오 南郭舊遊渾似夢 (남곽구유혼사몽) 남쪽 성곽에서 옛날 놀던 일 온통 꿈만 같아 白頭吟望暮江濱 (백두음망모강빈) 백발로 저문 강가에서 읊조리며 바라보노라 - 신광수(申光洙, 1712~1775) 『석북집(石北集)』 권3 「삼월 삼짇날 권중범에게 부치다[三月三日寄權仲..

濟河焚舟

濟河焚舟(제하분주) / 春秋左氏傳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은데 예기치 않게 발목을 잡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게으름과 나태함, 불만과 질투, 술과 흡연 등 많은 것이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복병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워 학식과 무용(武勇)을 크게 떨친 분입니다. 평소 술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선생은 술을 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어느날 선생은 제하분주(濟河焚舟)라는 말과 함께 중대한 결심을합니다. 강(河)을 건너고(濟)나면 배(舟)를 불태워버린다(焚)는 뜻입니다. 이제 술을 끓겠다고 결심한다면 타고 ..

인생이 만약 늘 첫 만남 같다면

(人生若只如初見) 나란성덕(納蘭性德: 1655-1685) 인생이 만약 늘 첫만남같다면, 가을 바람에 화선(畵扇)이 슬퍼할 일 어찌 있겠어요. 얼마 못 가 변해버린 내 님 마음, 연인의 마음은 원래 쉽게 변하곤 했다며 핑계를 대네요. 여산(驪山)에서의 굳은 맹세 허사 되고 밤은 깊어만 가건만, 밤 비 방울 소리에 마음 애절해도 끝내 원망은 없어요. 멋지게 차려 입은 매정한 그대, 당현종과 양귀비의 그 날 언약 어찌할까! 人生若只如初見 (인생약지여초견), 何事秋風悲畵扇 (하사추풍비화선)。 等閑變却故人心 (등한변각고인심), 却道故人心易變 (각도고인심이변)。 驪山語罷清宵半 (여산어파청소반), 夜雨霖鈴終不怨 (야우림령종불원)。 何如薄幸錦衣郎 (하여박행금의랑), 比翼連枝當日願 (비익연지당일원)。 청(淸)나라 때 만..

일주일은 왜 7일일까

원래 동양에서는 이레 (7일)를 한 묶음으로 해서 시간을 구분하는 관습이 없었어요. 고대 중국인들도 이집트인들이나 그리스인 들이 그랬듯이 열흘을 단위로 날짜를 끊었지요. 이것이 우리에게도 전래 되어 열흘 단위 풍습이 생겨났어요. 그 흔적으로 지금도 초순, 중순, 하순 이라고 할 때 그 순(旬)이 바로 한달을 열흘단위로 끊어서 센 시간의 단위 이지요. 요즘 잡지들은 주간, 격주간, 월간, 격월간, 년간, 반년간 등이 있지만 불과 30년전만 해도 순간(旬刊) 잡지가 있었어요. 그것이 바로 열흘에 한번 나오는 잡지 였지요. 시간을 7일씩 끊어서 사회생활에 리듬을 삼는 관습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유태교- 기독교적 전통이지요. (성서는 하나님이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레째에는 쉬었다고..

백학 비룡교 맛집

백학 가는 길 비룡교를 건너자마자 연천 백학 노곡리 뚝방길이 쭉~이어진다. 한탄강변벚꽃이 만개하기 직전이다.이곳에 토종닭 백숙을 잘하는 집이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손님들로 꽉 차는 바람에 닭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이웃집으로여울목 매운탕집이다.일명 섞어 매운탕. 메기 등 이것저것 섞어 넣었다.끝무렵에 수제비를 넣어준다.과연 맛집으로 이름이 날만하다. 평소 민물 매운탕은 잘 안 먹는데 이날은 좀 달랐다. 맛있다.멍육회 회원들. 처음에는 다섯 명의 멍한 놈들이 모여 '오멍회'라 했는데 한 명의 멍청이가 추가되는 바람에 '멍육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광장시장 '육회' 집으로 착각하지 마시길.. 모두 고교동창들이다.

내가 살아 보니까

내가 살아 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정도로 생각하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빽을 들고 다니든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담긴 내용물 이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매력적인 사람들은 TV를 통해 보거나 길거리에서 보면 되지만 그런 것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

두 구멍 이야기

〈두 구멍이야기〉라는 책의 제목을 접하는 순간 과연 “그 구멍이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류 최고의 성인 중에 한 분인 공자(孔子), 삼국지 최고의 책사로써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공명(孔明), 이 두 사람들의 이름 속에 하나씩 들어있는 구멍(孔)이 해답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동물의 왕 호랑이의 가죽은 호랑이의 용맹성, 왕의 권위 등 호랑이의 개성과 특질을 가장 잘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공자와 공명이라는 이름에도 가장 공자답고 공명다운 개성이 들어있으며 그것을 대표하는 단어가 바로〈구멍〉이다. 공자(孔子)라는 이름을 직역하면 ‘구멍의 자식 내지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공자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어머..